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성리학 등)

고려 후기는 무신정권의 붕괴와 몽골(원)의 침입 및 간섭으로 시작되어,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겪은 시기입니다. 기존의 문벌귀족 사회는 해체되었고, 새로운 지배 세력이 등장하여 갈등했으며, 대외 교류의 확대로 경제와 문화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특히 성리학 의 수용은 고려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 새로운 지배 세력의 등장: 권문세족 과 신진 사대부

원의 간섭기 이후 고려 사회의 지배층은 권문세족(權門勢族)과 신진 사대부(新進 士大夫)라는 두 세력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이 두 세력의 대립과 갈등은 고려 말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가. 권문세족: 친원적 성격의 기득권층

• 형성: 이전부터 존재했던 상층 문벌귀족 가문, 무신정권 시기의 고위 관료, 그리고 몽골과의 관계 속에서 통역관이나 원나라 공주를 따라온 측근 세력 등이 결합하여 형성되었습니다.
• 정치적 기반: 이들은 주로 음서(蔭敍)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으며, 도평의사사(도병마사가 개편된 최고 정치 기구)와 같은 핵심 권력 기구를 장악했습니다. 친원적인 성향을 보이며 원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했습니다.
• 경제적 기반: 불법적으로 토지를 겸병하여 농장(農莊)이라 불리는 대규모 토지를 소유했습니다. 이들은 농장에 소속된 농민들을 노비처럼 부리며 국가의 조세 수입을 감소시키고, 일반 농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 사상적 기반: 대체로 불교를 후원했으나, 사상적으로 뚜렷한 이념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적인 권력 유지에 집중했습니다.

나. 신진 사대부: 성리학 으로 무장한 개혁 세력

• 형성: 주로 지방의 향리(鄕吏) 출신으로, 과거(科擧)를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한 인물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실무 행정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 사상적 기반: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성리학(性理學)을 수용하여 새로운 사회 개혁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안향, 이제현, 이색 등이 있으며, 이들의 제자인 정몽주, 정도전 등이 신진 사대부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 정치·경제적 입장: 권문세족의 친원적 행태와 불교의 폐단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또한, 권문세족이 소유한 농장 문제를 해결하고 토지 제도를 개혁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민생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민왕의 개혁 정치 시기에 중용되었으나, 기득권층의 반발로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2. 고려 후기의 사회 제도와 변화

가. 사회 제도의 동요

원의 간섭과 권문세족의 횡포로 기존의 신분 질서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몽골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하층민이 신분 상승을 하거나, 권문세족에게 토지를 빼앗긴 양민이 노비로 전락하는 등 신분 이동이 빈번해졌습니다. 국가의 구휼 제도인 의창(義倉)이나 이자를 통해 빈민을 구제하던 제위보(濟危寶) 등도 권문세족의 수탈로 기능이 약화되었습니다.

나. 향도의 변화

향도(香徒)는 본래 불교 신앙을 기반으로 매향(埋香) 활동(미래에 미륵불을 만나 구원받기를 기원하며 향나무를 땅에 묻는 의식)을 하던 신앙 조직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그 기능이 확대되어 마을의 길흉사(혼례, 상장례)를 주관하고, 다리 건설이나 저수지 축조와 같은 공동의 노역을 함께하는 농민 공동체 조직으로 성격이 변화했습니다.

3. 활발한 경제 활동과 무역

가. 농업과 수공업

• 고려 말에는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심경법, 深耕法)가 일반화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었습니다.
• 공민왕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木花)를 들여와 그의 장인인 정천익이 재배에 성공하면서 의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 화약 제조 기술도 발달하여 최무선이 화통도감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고, 이를 통해 제작된 화포는 왜구 격퇴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나. 대외 무역

고려의 국제 무역항이었던 벽란도(碧瀾渡)는 원의 간섭기에도 여전히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원나라와의 교역: 원의 수도인 대도(오늘날의 베이징)를 중심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인삼, 나전칠기, 모시 등을 수출하고 비단, 약재, 서적 등을 수입했습니다. 원의 화폐인 보초(寶鈔)가 국내에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 기타 지역과의 교역: 일본,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와도 교역을 지속하며 향신료, 산호 등을 수입했습니다. 아라비아 상인들도 벽란도를 통해 고려와 교류하며 ‘코리아(Korea)’라는 이름을 서방에 알렸습니다.

4. 불교 문화의 정수와 인쇄술의 발달

가. 불교계의 동향과 개혁 운동

권문세족과 결탁한 일부 사찰은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상업 활동에 나서는 등 세속화되어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교계의 타락에 맞서 새로운 개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 조계종(曹溪宗): 지눌(知訥)이 창시한 종파로,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려 했습니다. 그는 수행 방법으로 정혜쌍수(定慧雙修)(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음)와 돈오점수(頓悟漸修)(단번에 깨닫고 점차 수행함)를 제시했습니다.
• 백련결사(白蓮結社): 요세(了世)가 주도한 운동으로, 법화 신앙을 바탕으로 참회와 염불을 통한 신앙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나. 대장경 조판과 인쇄술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몽골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제작되었습니다. 약 16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글자체와 오탈자가 거의 없는 완벽함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 금속 활자 인쇄술: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하여 인쇄에 사용했습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은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1234년)이나 현재 전해지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 청주 흥덕사)로, 이 역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보다 약 78년 앞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