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 성장 (1948~1979)

광복과 분단, 그리고 6·25 전쟁이라는 거대한 시련을 겪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정착과 경제적 자립이라는 두 가지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이승만 정부의 장기 집권과 4·19 혁명, 5·16 군사 정변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계획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장에서는 권위주의적 통치에 맞선 민주화 운동의 전개 과정과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압축적 경제 성장의 명암을 심도 있게 탐구합니다.

1. 이승만 정부의 장기 집권과 4·19 혁명

1) 장기 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6·25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 발췌 개헌 (1952, 1차 개헌): 당시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였으나, 이승만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국회를 통하지 않고 국민의 직접 선거로 당선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안(대통령 직선제)과 국회 내각제안의 일부를 발췌하여 기립 표결 방식으로 헌법을 불법적으로 통과시켰습니다.
• 사사오입 개헌 (1954, 2차 개헌):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안이 국회 표결에서 정족수 1명 미달로 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수학의 사사오입(四捨五入, 반올림) 논리를 억지로 적용하여 부결된 개헌안을 가결된 것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절차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사건입니다.
• 독재 정치 강화: 이승만 정부는 정적을 탄압하는 데 국가 권력을 동원했습니다.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진보당의 당수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사형에 처하고(진보당 사건, 1958),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던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는 등(1959)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였습니다.

2) 4·19 혁명의 배경과 전개

이승만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계기로 폭발했습니다.

• 배경 (3·15 부정선거): 이승만의 4선 집권을 위해 자유당 정권은 유례없는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4할 사전투표, 유권자 협박, 투표함 바꿔치기 등 조직적인 부정선거는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 전개:
  1. 마산 시위 (3월 15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경남 마산에서 처음 발생했습니다.
  2. 김주열 열사의 죽음 (4월 11일): 마산 시위 당시 실종되었던 학생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3. 고려대 학생 시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한 후 학교로 돌아가던 중 정치 깡패들의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4. 전국적 시위 확산 (4월 19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이승만 하야”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 진압을 시도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5. 교수단 시위와 이승만 하야 (4월 25~26일): 전국의 대학교수단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며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에 동참하자, 민심은 완전히 돌아서게 됩니다. 결국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발표했습니다.

3) 4·19 혁명의 결과와 의의

4·19 혁명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한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혁명 이후 허정을 중심으로 한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고,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국회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총선거를 통해 민주당의 장면이 국무총리로 선출되며 제2공화국이 출범했습니다.

2. 5·16 군사 정변과 박정희 정부

1) 5·16 군사 정변과 군정

제2공화국은 민주적인 제도를 도입했으나, 구 정권 인사 처벌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각계각층의 분출하는 요구 속에서 사회적 혼란을 효과적으로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틈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 군정 실시: 군사 정변 세력은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하여 입법·사법·행정권을 모두 장악하는 군정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언론을 통제하고 정치 활동을 금지했으며,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았습니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창설하여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핵심 기구로 활용했습니다.

2)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제3공화국

박정희는 1963년 군복을 벗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조국 근대화’를 내세우며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 1·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62~1971):
  • 목표: 경공업 육성과 사회 간접 자본 확충을 통한 수출 증대 및 자립 경제 기반 구축
  • 주요 내용: 섬유, 신발 등 수출 중심의 경공업을 집중 육성하고, 전력, 정유, 시멘트 등 기간 산업을 건설했습니다. 이 시기에 국가의 대동맥이라 불리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1970년 완공)되었습니다.
  • 자금 조달: 경제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 조달했습니다.
    • 한일 국교 정상화 (1965):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굴욕 외교라는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 명목의 경제 협력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 베트남 전쟁 파병 (1964~1973): 미국의 요청에 따라 국군을 파병하고, 그 대가로 차관 제공과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 지원 등을 약속받았습니다(브라운 각서).
    • 서독에 광부 및 간호사 파견 (1960년대): 외화 획득을 위해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습니다.

3) 유신 체제와 중화학 공업 육성

박정희 정부는 경제 성장을 명분으로 장기 집권을 꾀했습니다. 1969년 3선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3선 개헌을 통과시킨 데 이어, 1972년에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영구 집권을 위한 10월 유신을 단행했습니다.

• 유신 헌법의 주요 내용:
  • 대통령 간선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임기 6년의 대통령을 선출.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
  • 대통령의 권한 강화: 국회의원 정수의 1/3 추천권(유신정우회), 국회 해산권, 모든 법관 임명권 등을 가짐.
  • 긴급조치권: 헌법상의 국민 기본권을 대통령의 명령으로 언제든지 제한할 수 있는 초헌법적 권한.
• 3·4차 경제 개발 계획과 중화학 공업: 유신 체제 하에서 정부는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을 선언하고, 포항제철을 비롯한 철강, 기계, 조선, 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이는 수출 100억 달러 달성(1977)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낳았으나, 중복·과잉 투자와 1, 2차 석유 파동(오일 쇼크)으로 인해 경제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 유신 체제의 붕괴: 긴급조치를 통한 강력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유신 체제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1979년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를 신민당사에서 진압한 사건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은 부마민주항쟁(부산·마산 지역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부마항쟁의 수습 방안을 둘러싼 지배층 내부의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는 10·26 사태가 발생하면서 18년간의 박정희 정권과 유신 체제는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