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과 근대 국가 수립 운동(강화도 조약)

1. 문호 개방과 강화도 조약

1) 개항의 배경

흥선대원군의 하야(1873) 이후 고종이 친정(親政)을 시작하면서,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 초기 개화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대외 정책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정한론(征韓論)’을 내세우며 조선에 대한 침략적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개항을 압박하기 위한 명분을 찾던 중, 1875년 군함 운요호를 강화도 초지진에 불법으로 접근시켜 포격을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무력 시위를 벌이는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조선 정부는 일본의 군사적 압력에 굴복하여 1876년, 일본과 근대 최초의 조약인 강화도 조약 (정식 명칭: 조일수호조규)을 체결하게 됩니다.

2) 강화도 조약의 내용과 불평등성

강화도 조약은 총 12관으로 구성되었으며, 표면적으로는 근대적 조약의 형태를 띠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선의 주권을 침해하는 불평등한 조항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 제1관: “조선은 자주국이며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 의도: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을 부인하고, 조선을 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여 일본의 침략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 제4관, 제5관: 부산 외 2곳의 항구(원산, 인천)를 개항하고 일본인의 통상을 허락한다.
  • 부산(경제적 목적), 원산(군사적 목적), 인천(정치적 목적)을 순차적으로 개항하여 일본의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 제7관: 조선의 해안을 자유롭게 측량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 조선의 연안 지형과 수심 정보를 일본이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명백한 주권 침해 조항입니다.
• 제10관: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죄를 지었을 경우 일본의 영사가 재판한다(치외법권).
  • 조선의 사법권이 일본인에게 미치지 못하게 한 불평등 조항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강화도 조약 이후, 조일수호조규 부록과 조일무역규칙(통상장정)이 추가로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들은 일본 화폐의 유통, 일본 상인의 활동 범위(거류지) 설정 등을 규정했으며, 특히 조일무역규칙은 무관세, 무항세, 양곡의 무제한 유출을 허용하여 일본의 경제적 침탈을 가속화하고 조선 내 쌀값 폭등과 민생 파탄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2. 개화 정책의 추진과 반발

1)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본격적인 개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 총괄 기구 설치: 1880년, 개화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통상, 군사 등 제반 업무를 관장하게 했습니다.
• 사절단 파견:
  • 수신사: 일본의 발전상을 시찰하기 위해 파견. 1차 수신사(김기수)에 이어, 2차 수신사 김홍집은 일본에서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을 국내에 들여왔습니다. 『조선책략』은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親中國, 結日本, 聯美國)’을 통해 러시아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 조사시찰단: 신사유람단이라고도 불리며, 비밀리에 일본에 파견되어 각 분야의 근대 문물을 시찰했습니다.
  • 영선사: 청나라에 파견되어(김윤식 인솔) 톈진의 기기국에서 근대적 무기 제조 기술을 습득하게 하였으며, 이들이 귀국하여 근대식 무기 공장인 기기창(1883) 설립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 보빙사: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답례로 미국에 파견된 최초의 공식 사절단입니다(민영익, 홍영식 등).
• 군제 개혁: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하고 일본인 교관을 초빙하여 훈련시켰습니다.

2)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

개화 정책과 외세의 침투에 맞서 성리학적 전통 질서를 지키고 외세를 배격하려는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시기별로 상소 운동에서 무력 항쟁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 1860년대 (통상 반대): 흥선대원군 집권기. 이항로, 기정진 등이 서양과의 통상 자체를 강력히 반대하는 척화주전론을 주장했습니다.
• 1870년대 (개항 반대): 강화도 조약 체결을 전후하여 최익현이 ‘지부복궐상소’를 올려 “왜(倭)와 양(洋)은 본질적으로 같다(왜양일체론)”며 개항에 반대했습니다.
• 1880년대 (개화 정책 반대):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이 주도한 영남만인소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러시아를 막기 위해 미국과 손잡는다는 논리를 비판하며 정부의 개화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했습니다.
• 1890년대 (항일 의병 운동):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유인석, 이소응 등 위정척사 사상가들이 의병을 일으켜 무력 항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3) 임오군란 (1882)

개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사건입니다.

• 배경: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인들이 1년 이상 월급을 받지 못하다가, 겨우 받은 한 달 치 봉급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여기에 개항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도시 하층민이 합세했습니다.
• 전개: 군인들은 선혜청 당상 민겸호를 살해하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했습니다. 이후 일시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은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폐지하는 등 개화 이전으로 되돌리려 했습니다.
• 결과: 명성황후 세력(민씨 정권)이 청나라에 군대 파견을 요청했고, 청은 군대를 파견하여 대원군을 톈진으로 납치해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청의 내정 간섭이 심화되었습니다. 또한 일본과는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지불하고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 주둔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청과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여 청나라 상인의 내륙 통상권을 일부 허용하는 등 경제적 침투를 심화시켰습니다.

4) 갑신정변 (1884)

임오군란 이후 청의 간섭이 심해지고 민씨 정권의 소극적인 개화 정책에 불만을 품은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입니다.

• 배경:
  • 개화파의 분화: 김홍집, 김윤식 등 청의 양무운동을 모델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한 온건개화파와,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급진적 변혁을 추구한 급진개화파로 나뉘어 대립했습니다.
  • 국제 정세: 청-프랑스 전쟁으로 조선에 주둔하던 청군 일부가 철수하자, 급진개화파는 이를 기회로 판단했습니다.
• 전개: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는 일본 공사관의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고,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정변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창덕궁으로 들어가 고종의 허락을 받아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14개조 개혁 정강을 발표했습니다.
• 개혁 정강의 주요 내용:
  • 청에 대한 조공 허례 폐지, 흥선대원군의 조속한 귀국
  •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 확립
  • 지조법(地租法) 개혁으로 국가 재정 확보
  • 모든 재정을 호조에서 통할
  • 규장각 폐지, 혜상공국 혁파 등
• 결과: 정변은 민씨 정권의 요청으로 출동한 청나라 군대에 의해 3일 만에 진압되었습니다(삼일천하). 김옥균, 박영효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습니다. 정변의 결과 조선은 일본과 한성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지불했고, 청과 일본 사이에는 텐진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텐진 조약은 “조선에서 양국 군대를 동시에 철수시키되, 향후 파병 시에는 상대국에 사전 통보한다”는 내용을 담아, 훗날 청일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