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사회의 변동과 새로운 문화

조선 후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란(兩亂)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겪은 시기였습니다. 모내기법의 확산으로 인한 농업 생산력 증대, 상품화폐 경제의 발달, 신분제의 동요 등은 기존의 성리학적 지배 질서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대안 모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용적 학문인 실학 (實學)이 등장했으며,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면서 국학(國學)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성장한 서민층이 문화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며 생동감 넘치는 서민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1. 경세치용과 이용후생, 실학 의 발달

실학 은 공리공론에 치우친 성리학을 비판하고, 실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실증적이고 실용적인 학문 연구를 지향했습니다. 실학자들은 크게 농업 중심의 개혁을 주장한 중농학파(경세치용학파)와 상공업 진흥과 기술 혁신을 강조한 중상학파(이용후생학파)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중농학파 (경세치용학파)

중농학파는 토지 제도의 개혁을 통해 자영농을 육성하고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주로 경기 지역의 남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 유형원 (1622~1673): 실학 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저서 『반계수록』에서 신분에 따라 토지를 차등 분배하는 균전론(均田論)을 주장하며, 토지 제도와 함께 군사, 교육 제도의 개혁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 이익 (1681~1763): 유형원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성호학파를 형성했습니다. 방대한 백과사전적 저술인 『성호사설』을 남겼으며, 나라를 좀먹는 여섯 가지 폐단(육좀: 노비, 과거, 양반 문벌, 미신, 승려, 게으름)을 지적했습니다. 토지 개혁 방안으로는 최소한의 생계유지 토지인 영업전(永業田)의 매매를 금지하고 그 외 토지만 매매를 허용하는 한전론(限田論)을 주장했습니다.
• 정약용 (1762~1836): 실학 을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초기에는 공동 농장에서 함께 일하고 노동량에 따라 수확물을 분배하는 여전론(閭田論)이라는 급진적인 토지 개혁안을 제시했으나, 현실성을 고려하여 후기에는 토지를 ‘정(井)’자 모양으로 나누어 분배하는 정전론(井田論)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중앙 행정 개혁을 다룬 『경세유표』, 지방관의 지침서인 『목민심서』, 형법서인 『흠흠신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또한, 수원 화성 축조 시 거중기를 설계하는 등 과학 기술에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2) 중상학파 (이용후생학파, 북학파)

중상학파는 18세기 후반 청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서울의 노론 가문 출신 학자들이 많았으며, ‘북학파(北學派)’라고도 불립니다.

• 유수원 (1694~1755): 저서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며 상공업 진흥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 홍대용 (1731~1783): 사상가이자 과학자로, 『의산문답』에서 성리학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지전설(地轉說)과 무한우주론을 주장했습니다. 사적인 천문 관측 기구인 혼천의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 박지원 (1737~1805): 청나라 여행 경험을 담은 『열하일기』를 통해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청의 발달된 기술을 적극 수용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양반의 무능과 허례허식을 비판하는 풍자적인 한문 소설(「양반전」, 「허생전」 등)을 쓰기도 했습니다.
• 박제가 (1750~1805): 박지원의 제자로, 청나라에 4차례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북학의』를 저술했습니다. 그는 “재물은 우물과 같아서 퍼내지 않으면 마른다”는 ‘우물론’을 통해 생산과 소비의 조화를 강조하며, 절약보다 적극적인 소비를 통해 생산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 국학 연구

조선 후기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우리의 역사, 지리, 언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국학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 역사 연구:
  • 안정복의 『동사강목』: 고증 사학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우리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 유득공의 『발해고』: 최초로 발해사를 우리 역사로 본격적으로 다루며, 신라와 발해가 공존했던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처음으로 명명했습니다.
  •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조선 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기사본말체(사건 중심 서술)로 정리한 야사 총서입니다.
• 지리 연구:
  • 이중환의 『택리지』: 각 지역의 자연환경, 경제, 인심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살기 좋은 곳을 제시한 인문지리서입니다.
  • 정상기의 『동국지도』: 최초로 ‘백리척’이라는 축척 개념을 사용하여 과학적인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조선 시대 지도 제작 기술의 집대성입니다. 목판으로 인쇄하여 대량 보급이 가능했고, 22첩으로 분첩하여 휴대하기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산맥, 하천, 도로망을 정밀하게 표현했으며,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하여 거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 국어 연구:
  • 유희의 『언문지』: 한글의 음운 체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했습니다.
  •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깊이 있게 분석했습니다.

3. 서민들의 이야기, 서민 문화의 성장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교육 기회가 확대되면서, 이들이 문화의 주체로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양반 중심의 문화와는 다른, 서민들의 솔직한 감정과 삶의 애환이 담긴 문화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 문학:
  • 한글 소설: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등 현실 비판, 신분 상승의 욕구,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룬 한글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전문 낭독가인 ‘전기수’가 등장할 정도로 대중화되었습니다.
  • 사설시조: 정형화된 평시조와 달리 형식이 자유롭고 길이가 길어진 사설시조가 유행하며 서민들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했습니다.
  • 판소리와 탈춤:
    • 판소리: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 치는 사람)가 이야기를 노래와 말로 엮어가는 공연 예술입니다. 「춘향가」, 「심청가」 등이 있으며, 양반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 탈춤: 가면을 쓰고 양반의 위선, 사회 모순 등을 해학적으로 비판하는 연극으로, 마을 공동체 축제에서 널리 행해졌습니다.
• 회화:
  • 진경 산수화: 이전까지 중국의 산수를 상상하여 그리던 관념적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실제 경치를 화폭에 담는 진경 산수화가 유행했습니다.
    • 정선 (1676~1759): 진경 산수화의 대가로,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 등에서 우리 자연의 특징을 힘차고 개성 있는 필치로 표현했습니다.
  • 풍속화: 서민들의 일상생활이나 양반의 풍류를 생생하게 담아낸 그림입니다.
    • 김홍도 (1745~?): 밭갈이, 씨름, 서당 풍경 등 서민들의 건강하고 활기찬 삶의 모습을 해학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대표작으로 「씨름」, 「서당」이 있습니다.
    • 신윤복 (1758~?): 주로 도시 양반들의 풍류와 남녀 간의 애정을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채로 묘사했습니다. 대표작으로 「미인도」, 「단오풍정」이 있습니다.